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스핑크스는 자신의 발보다도 작은 소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 시선을 마주봤다. 소녀의 요구를 들은 스핑크스는 우선 이 작은 인간이 제정신인지가 궁금했다. 이 소녀는 자신의 방해로 오랫동안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다른 인간들처럼 비쩍 말라 있었지만, 표정이나 행동만은 그들과 달리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까만 머리는 제...
로마네스크식 돔을 쌓았습니다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목소리가 요란합니다 목이 없는 사람들이 천장 위를 굴러갑니다 천장 밑에는 자신의 이름을 잊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기도를 올리며 잊어버린 것의 명명을 갈구합니다 나는 내 이름을 잊었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고 대리석 위로 새까만 구름들과 은하수가 흘렀고 그날은 자장가가 없어서 수면유도제를 먹었어 둥근 천장이...
간만에 들른 동네 식당의 음식은 영 맛이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입맛이 바뀐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변한 거겠지. 나는 테이블 건너편에 마주앉은 성해를 바라봤다. 성해는 여전한 얼굴만큼이나 입맛도 변하지 않았는지 열심히 젓가락으로 김치전을 조각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맛있어? 내가 ...
맑은 겨울의 한낮……. 건드리면 주위가 쨍하고 가라질 듯 무척이나 추워, 나의 팔을 잡고 있는 나젠까의 귀밑 곱슬머리와 윗입술 위 솜털에 은빛 성에가 서려 있다. 우리는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다. 우리의 발밑에서 저 아래 평지까지는 가파른 비탈이고, 그 비탈 위로 마치 거울처럼 태양이 비치고 있다. 우리 옆에는 선홍색 천으로 치장된 작은 썰매가 있다. “타...
상자가 다가온다 상자를 뛰어넘는다 또 다른 상자가 온다 더 높은 상자가 다가온다 또 상자를 뛰어넘는다 상자가 다가온다 상자를 뛰어넘다 멈칫한다 얼마만큼 뛰어야 하는 걸까 상자에 부딪친다 상자가 아프다 다시 처음의 상자에게 간다 상자가 다가온다 상자를 뛰어넘는다 상자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상자는 더욱 알록달록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상자를 뛰어넘는다 상자가 다가...
독일 가정에 입양되어 자라 한국계 외국인 슈니첼 씨는 어린 시절부터 사탕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나중에 사탕가게를 열고 싶어 했으며 스물여덟 살이 되는 해에 그 꿈을 이룬다. 이윽고 슈니첼 씨는 갖가지 연구 과정을 거쳐 슈니발렌 캔디를 만들게 되는데 이름하여 망치로 부숴 먹는 캔디이다. 물론 입아에 넣고 녹여 먹어도 좋다. 당신의 입이 크고 하동아 아무...
0 1 0 0 밤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가락으로 더듬다 0 0 1 0 새벽에 매미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 여름엔 매미가 커지고 점점 커져서 새를 잡아먹는다. 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1 0 0 0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 0 1 0 0 비행기 엔진 소리 잡아먹힌 새가 매미가 되는 소리 1 0 0 0 (나는 이곳에 없다...
창을 엽니다. 막 재개발이 시작된 창 밖으로, 멀리 옥상이 내려다보입니 다. 한 늙은이가 의자 아래로 흘러내 리는 제 몸을 주워 담고 있습니다. 그 옆에 다르 늙은이가 담뱃불로 제 허벅 지에 구멍을 내고 있습니다. 대기의 무게가 빈 몸통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무사히 종말이 오고 있었고 새로운 종 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을 켭니다. 누군가는 분신...
보이는 것들의 감옥이 있어 짐승을 잡아먹는 붉은 식육의 꽃이 있어 붉음이 직업이던 나날들이 있어 천국은 이미 당신의 것 늙고 눈먼 개를 낳아야만 하는 회임의 시간이 있어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꺼내 먹은 새 한 마리 연한 낫과 망치 속에서 익사한 당신의 말 당신의 물 아름다운 공포가 자라나는 창밖에는 푸르게 병이 들 때까지 새들의 울음을 모으는 나무가 있어 ...
백지다. 누군가 제 감옥을 토해놓고 갔다. 의심이 많아졌다. 백지의 아름다움을, 백지의 완벽함을 생각했다. 이젠 누구의 말도 믿지 않을 테다. 길 고양이 한 마리 제 배 속을 활짝 열어놓은 채 죽어 있다. 죽으 것만이 진실하다. 나 역시 죽은 적이 있었다. 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백지다. 창밖으로 눈과 비가 섞여 내린다. 일기예...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무심하게도, 무심하지 않게도 아닌, 가벼운 발걸음 소리, 이슬비 내리는 소리, 물이면서 바람, 바람이면서 세월,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안개의 무늬짐, 이 쉼표의 후미진 골목에 머무는 세월의 무늬짐,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 내 말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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